본문 바로가기

칼럼

어떤 시험이던 한번 더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재수를 했다. 그리고 사실상 똑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운빨로 붙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나는 밀려 썼고, 또 밀려 썼고, 얼떨결에 수시로 원하는 대학을 붙었다. 그런 운 좋은 놈이 도대체 무슨 이런 글을 쓰려 하느냐? 이 글의 주제가 무엇이냐? 물어볼 수 있겠다. 사실 좀 말하자면, 이 글에 특별한 의도는 없다. 시험을 한번 더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 것이고, 여러분은 거기서 여러분이 원하는 의도로 내 글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특별하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 라는 조언을 할 위치도 아니고, 그럴 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수십번의 시험에 노출된다. 유치원부터, 초중고, 그리고 학원, 그리고 징병검사도 시험이라 함은 시험이다 ( 물론 시험을 쳐야 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운전 면허 시험, 토익, 입사시험, 공무원 시험.. 매 순간 시험의 연속이다. 나 역시도 그런 인간이었고, 수 많은 시험속에서 난관을 해쳐오기도 하고, 시험에 막혀 울기도 했다. 시험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재를 정형화하고, 거기에 맞게 빨리 인재를 생산하는 ‘레디 메이드’인재를 만들기 위한, 어찌 보면 자원 없고 조그마한 동방의 한 나라가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잔인하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인재를 키워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험이란 것은 여러분이 아닌, 이 동방의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고, 여러분이 고통받는 것은 시험이 여러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며 누군가는 합격의 행복을, 누군가는 패배의 쓴 맛을 보는 것은 결국 제도가 의도한 인재를 뽑기 위한, 하나의 잔인한 절차인 것이다. 국민에게 주는 복지나 보호가 아닌 것이다.

 

누군가에게, 칼자루를 쥐어주고, 그리고 3년 뒤에 결투를 죽을 때 까지 하라 한다면, 패배하는 한 쪽이 노력을 덜 하거나, 능력이 덜 하거나, 정신 상태가 썩었다고 할 수는 없다. 바닥 상태가 안좋아서, 몸 상태가 안좋아서, 그냥, 진짜 그냥 죽을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은 패배했으니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냥 잔인한 현실이 그런 것이다.

난 그래서 항상 수험생활을 할 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시험은 어차피 독립시행, 내가 쌓아놓은 것이 시험 때 빛을 발휘하는 것도 확률, 그리고 시험 장에서 잘보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사실, 이 모든게 잔인하다는 사실 자체를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노력해도 안되는 것도 있다. 노력해서 되는 것도 노력한다고 다 되는것도 아니다. 그리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안되는 것들은 많다.

 

시험을 도전하면서 힘든 가족들, 버리는 기회비용들, 모든 것을 마다하고, 그 실낯 같은 희망에 모든걸 걸어보려는 당신은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확률을 가져갈 것이란 것은 뻔하디 뻔하게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잔인한 현실을 모두 아는 당신이, 그 잔인한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은 아름답다. 실패 가능성까지 생각해두어도, 당신은 아름답다.

 

파이팅.